어릴적 동네 잔치를 할때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 돼지수육과 순대였다. 돼지배에 구멍을 내고 철철 흘러나오는 피를 빨간 대야에 담아 순대를 만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입맛에도 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꼼꼼한 단맛은 사냥을 하고 살았던 구석기 인들의 유전자가 남아있어서 일까? 무척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시절 특히 좋아했던 것이 간이었다. 간도 피순대 못지않게 특유의 향과 맛이있는 재료인데 너무 급하게 먹다가 체해서 고생한 이후로는 즐겨먹지않게 된 음식이되었다. 


요즘은 피순대, 즉 선지순대를 즐길 수 있는곳이 많지 않다. 대신 다양한 순대집들이 자리잡고 있다. 흔히 우리가 즐기는 당면만 가득한 순대집이 많다. 고딩시절 분식집에서 당면순대에 몰래 소주를 마시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찹쌀, 당면보다 돼지피가 주가 되는 순대는 부산에서 조광심민속왕순대 밖에 모른다. 진주에 가면 한번씩 완사 순대집에서 즐긴다.   

조광심민속왕순대는 퇴근길에 밥하기 싫은 날 주차하고 국밥 한그릇 하는 곳이다. 집근처에 있어 친구가 놀러오면 한잔하러간다. 피순대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입맛에 딱 맞는 순대를 주니 원초적인 맛이 땡기는 날이면 아니갈수없는 곳이기도 한다. 이곳은 3가지 순대를 내준다. 피순대, 고기순대, 카레순대이다. 고기, 카레순대보단 피순대가 훨 맛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입맛이니 피순대의 텁텁한 맛이 싫은 사람들은 카레순대가 맛있다고 했다. 이집은 순대를 주문하면 술국이 나오는데 이게 또 별미다. 순대 삶은 물에 콩나물과 각종 채소를 넣고 들깨를 넉넉히 넣어 만든 국인데 술안주로 최고다. 술국이라 해서 다른집에 나오는 허접한 술국이 아니라 내용물도 탄탄하다. 보통 순대국밥집에서 시킨 국밥보다 더 내용물이 푸짐하다. 모듬 순대가 나오기전 술국으로 한병 비우는건 일도 아니다. 술국은 보신탕맛과 비슷하다. 그냥 고기국이 아니니 그럴지언데 들깨까지 들어가니 더 맛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 맛이 싫은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순대가 나왔다. 모듬순대를 시키면 3가지 순대와 수육이 함께 나온다. 푸짐한 양이 소자(12,000원)이 싸다는 느낌을 든다. 음식을 먹으면서 가격대비 질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또 찾게 되고 단골이된다. 나도 단골이 되어버렸다. 이집은 어른들말고도 단골들이 많다. 인근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학생들에겐 국밥을 저렴하게 판매하신다. 정확하진 않지만 반값이 아닌가 싶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학생할인, 참 고마운 마음이다.

누구에겐 텁텁하고 냄새나는 피순대지만 한번 원초적인 그 맛에 빠져들면 중독되어버리는 요리다. 가까운 곳에 맛난 피순대를 하는 곳이 있음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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